플레이하는데에 걸린 시간은 일주일 이내였으나 (그나마도 본편은 3일컷이었고) 그 뒤로 몸이 아프다보니 리뷰를 쓰는걸 미뤄버렸다. 2월 신작도 발매되었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아무튼 써야지.
2024년에도 이런 작품을 플레이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올해도 아직 업계가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히로인끼리는 모르겠고 일단 치고받고 죽이긴 해야지. 누군가는 죽어야 감동이 있지 않겠냐
7년만에 돌아온 이로도리가 보내는 2024년 최고 대작, 가장 현대적인 사극 비주얼 노벨.
1. 소개
八剱伝 (팔검전)
공식 오프닝 무비 : https://youtu.be/FAmIRrq4Ly0
(오프닝 곡만 3개, 무비는 4개나 있지만 처음 것만 가져온다)
2017년에 발매된 벚꽃재판을 기억하는가. 역전재판을 오마쥬한 시스템과 시나리오 구성, 시대적 배경과 인물로 신센구미를 사용해 예상 가능한 전개를 가장하더니, 인물의 테마를 제외한 부분은 완전히 재구성해 일종의 클리셰 비틀기를 해내며 (후반부의 특정 인물의 폭주로 인해 시나리오가 반쯤 맛이 갔었지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그 작품.
그 작품의 제작 브랜드 IRODORI 스탭들이 7년이 지난 2024년 1월, 등장인물 수만 40명이 넘어가는 대작을 발매했다. 등장인물이 많은 게임이라 하면 역시 연희무쌍 시리즈나 센고쿠 시대를 그린 사극 게임들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이 게임 역시 그런 사극 계열 부류에 속한다고 할 난소사토미팔견전 이라는 일본 에도시대 소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작중 시대적 배경은 센고쿠 시대 직전인 무로마치 막부 시절.
구성은 군상극이자 전기적 구성이다. 남녀 2인 페어로 4개의 병렬 시나리오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상 가능하듯이 본편은 큰 줄기의 서사를 각 페어의 시선에서 진행해나가는 구성이다. 본편은 시나리오 흐름에만 충실하고 연애 요소가 없으며 후일담에서만 진행되는 식이다. 이는 전작의 벚꽃재판과 유사한 구성.
일러스트에서 스탠딩 일러스트와 이벤트 cg간의 화품 갭이 엄청나게 심한데, 스탠딩 일러스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히 저질인 편이지만, 이벤트 cg는 그래도 채색에서 힘을 줘서 잘 살려낸 편. 인물 수, cg 수가 상당히 많다보니, (여타 풀 프라이스 게임과 비교해 이벤트 cg 갯수가 1.5배 이상 된다) 평상시 일러스트가 옛날 화풍을 사용하고 있고 이벤트 cg는 조금 더 요즘 화풍에 가깝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질감을 느낄 수도.
인물 수도 많지만 중복 캐스팅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정말 간만에 듣는 목소리들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2024년에 목소리를 단역으로나마 들을 수 있어 반가운 분들도 있다. 신구의 조화가 필연적으로 잘 이루어져있다. 오프닝 곡 역시나 하라다 히토미, Rita의 옛날 사람들과 아이마이 모코우라는 요즘 성우가 각각 하나씩 담당했다.
2. 평가
팔견전 내용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있지 않았던 상태라서(이 게임에서 처음 접해봤다) 일본 위키피디아를 보면서 파악하려고 했는데, 역시 딱히 필요가 없었다. 사용한 소재가 뚜렷하다보니 전개가 예상 가능하다? 이로도리는 그 따위로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도 당당하게 보여줬다. 적절한 오마쥬와 클리셰 비틀기, 그리고 과감하게 인물을 퇴장시키는 시나리오의 깔끔함까지 아주 훌륭했다.
등장인물이 40명이나 만들어서 힘들다고 말하는 듯이, 참 잘도 죽인다. 덕분에, 이야기에서 붕 뜨는 캐릭이 없다. 어떻게든 이야기에 참여시키거나 퇴장시키거나 그런 운명밖에 없다. 다만, 군상극적 요소때문에 등장인물이 여러 이야기에 걸쳐서 이야기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부분에서 캐릭터들의 영향이 적은 경우가 많은 것은 마이너스.
작중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인정하듯, 네 쌍이 직접적으로 교류하게 되는 부분이 거의 없고 막바지에서도 각자의 서사만 진행하는 점은 조금 아쉬운 편이다. 이것은 시나리오적 역량 문제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얽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복잡한 것을 생각하면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경우는 많아 어느정도 보충되어 따로 논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편.
그것보다는 시스템이 상당히 거슬렸는데, 팔검전의 시스템은 까놓고 말해 진짜 수준 이하가 맞다. 본작의 평을 깎아먹는 요소의 적어도 9할은 차지할 것 같다.
먼저 그놈의 에피소드 막간. 메인 줄기가 '몇 화'같은 식으로 구성되는데, 각 페어별로 해당 화의 첫 에피소드를 시작할 때 쓸데없이 웅장한 연출을 틀어주고 에피소드 개요를 읊어주는 부분이 참 거슬렸다. 다음 화 예고도 거슬렸던게, 영상 취급이라 볼륨 조절도 똑바로 안 되는데, 하라다 히토미가 특유의 우렁차게 찢어지는 목소리로 부른 1번째 오프닝곡을 틀어주다보니 귀가 아파서 좀 그랬다.
인물 간의 관계도나 용어사전같은 걸 만든 것은 참 친절하다 생각하는데, 추후에 각 페어별로 찢어져 있던 인물간의 관계도가 하나로 합쳐져 있으면 참 웅장하기도 하고 뿌듯했을텐데 그런 감성이 부족한가? 끝까지 그냥 파트별로 일부만 보여주는 식이라서 너무 아쉬웠다. 용어 사전은 공통이었지만 보통은 시나리오 보다 보면 중반 이후에는 사전은 안 보니까.
그리고 플로우 차트가 너무 안 예쁘다. 물론 직접적으로 교차되는 분기가 있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닌데, 어느 페어의 시나리오를 일정 이상 진행해야 다른 페어의 시나리오가 열리는 그런 시간적 순서만 있고, 클리어 후에도 이야기 플로우 차트를 다시 열어보거나 할 수 없는 점은 불만족스러운 편.
하지만 본편의 이야기 구성에 대해서는 딱히 불평할 구석이 없다. 후일담도 상당히 잘 쓰여진 편으로, 본편 서사에 얽혀 있던 인물들과는 엇갈리고 오히려 다른 조합과 마주치게 되는 부분이라던가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후일담의 개별 에피소드 자체도 잘 짜여있다.
다만, 그 약간 의무방어전 식으로 집어넣은 듯한 똑같은 구성의 H신때문에 뭔가 후일담 시나리오가 다 똑같아보이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놈들 벚꽃재판때도 묶는거 있었던 것 같은데(기억 흐릿함), 스탭 중에 누군가 귀갑묶기 페티시가 있는 걸까. 죄다 한번씩은 묶어버리던데.
3. 평가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다음 작도 보고싶다.
4.5 / 5.0
올해의 야겜 최유력 후보
물론 그 아직 크리미널 보더 4편이나 다른 나올거 뭐 있을 것 같긴 한데, 일단 그냥 체급 압살 아님?
처음부터 공략 쌍이 정해져 있는 이런 류의 게임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플들이 나왔는데(에프의 유우/유우코나 오레츠바의 슈스케/히요코) 본작은 잘 모르겠다. 그나마 고분고가 그 아재느낌이 참 매력적인 캐릭이었는데 겐파치는 너무 왈가닥이야.
2월 신작은, 월풀 신작과 크리스탈리아 신작- 그놈의 스자쿠인 원툴 칼겜을 합니다.
둘 다 플레이에 몇 달이 걸릴지 걱정임. 진짜 가면 갈수록 연애물은 못 읽겠음. 늙어서 그런가?